현실이 전쟁이 된 영화 촬영장
영화는 종종 현실보다 더 극적인 픽션을 만들어내지만, 때때로 현실이 영화보다 더 충격적일 때가 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1979년작 《아포칼립스 나우(Apocalypse Now)》는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의 광기와 혼돈을 그린 대서사시이자, 동시에 촬영 현장 자체가 하나의 전쟁터였던 작품으로도 악명 높다.
오늘은 촬영 중 실제 사건들로 유명해진 영화들 중에서 아포칼립스 나우 – 전쟁보다 더한 촬영장의 카오스 : 배우의 마약, 감독의 정신 붕괴, 실제 폭격 장면까지… 촬영 뒷이야기에 대해 알아볼 예정이다.
영화는 조셉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을 바탕으로 하여, 전쟁이라는 인간성의 파괴 기제를 심리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촬영 과정은 그 어떤 스토리보다도 극적이고 혼란스러웠다. 배우들의 약물 중독, 감독의 정신 붕괴, 실제 무기 사용, 현지 폭풍, 제작사 파산 위기 등,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는 동안 일어난 사건들은 실로 믿기 어려울 정도다.
《아포칼립스 나우》는 단순한 전쟁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영화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위험하고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메타 전쟁기'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영화만큼이나 전설적인 촬영 뒷이야기, 그 안의 인간 군상, 그리고 예술이 탄생하는 광기의 한계를 들여다본다.
코폴라의 집착과 무너져가는 정신
《아포칼립스 나우》의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이미 《대부》 시리즈로 명성을 얻은 천재 감독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에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집착과 강박을 드러낸다. 코폴라는 영화의 모든 장면이 예술이기를 원했고, 그것이 현실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결과, 수많은 장면이 실제로 필리핀 밀림에서 촬영되었고, 세트를 꾸미기보다 현실을 그대로 담는 데 집중했다.
촬영은 1976년 시작되었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재촬영과 자연재해로 인해 1년 가까이 연기되었다. 코폴라는 스스로 영화가 실패할 것이라며 자살까지 고려했다고 고백했으며, “이 영화는 단지 베트남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그 자체가 베트남”이라며 촬영 자체가 전쟁의 혼돈과 닮아 있었다고 표현했다.
그의 강박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았고, 시나리오는 촬영 중에도 계속 바뀌었으며, 배우들과 제작진은 감독의 방향을 따라가기가 힘들어졌다. 실제로 코폴라는 자기 자금을 끌어다 제작을 이어갔고, 영화의 미래는 늘 파산 위기에 놓여 있었다.
배우들의 극한 상황과 마약
코폴라의 집착만큼이나 영화 촬영을 혼돈으로 몰고 간 또 다른 요소는 배우들의 불안정한 상태였다. 마틴 신은 영화 초반부 촬영 도중 알코올 중독과 심장마비를 겪으며 쓰러졌고, 그의 많은 장면은 실제로 술에 취한 상태로 촬영되었다.
특히 문제의 장면은, 마틴 신이 거울 앞에서 분노하며 손을 깨뜨리는 씬이다. 이 장면은 리허설이 아닌 실제 촬영 중 벌어진 사고였고, 그는 피를 흘리며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는 영화에 실제로 삽입되어, 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동시에 배우가 신체적으로 얼마나 극한 상황에 몰렸는지를 상징한다.
또 다른 주요 배우인 데니스 호퍼는 마약에 중독된 상태로 현장에 등장했다. 그는 캐릭터 자체가 광기 어린 전쟁 사진가였기에, 실제 정신 상태와 연기가 뒤섞이면서도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코폴라는 그의 혼란스러운 행동을 영화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촬영을 강행했다. 스크립트 없이 즉흥 연기로 버티는 상황이 이어졌고, 마치 모두가 환각 속에 있는 듯한 촬영 분위기가 이어졌다.
진짜 폭격과 죽음의 현실감
《아포칼립스 나우》는 ‘전쟁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전쟁 자체를 관객에게 경험시키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이를 위해 실제 헬리콥터와 무기를 필리핀 군대에서 빌려 사용했고, 실제 폭격 장면도 카메라에 담겼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도저히 허용되지 않을 촬영 방식이었다.
촬영 도중 태풍이 세트를 파괴하면서 일정은 대폭 연기되었고, 코폴라는 이를 또 하나의 ‘기회’로 여기며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심지어 일부 마을 장면에서는 진짜 현지인을 데려와 병사나 주민으로 출연시켰으며, 동물 희생 장면에서는 실제 동물 도살이 카메라에 담겨 논란이 되기도 했다.
브란도 역시 촬영에 늦게 참여했지만, 극도로 비만한 상태로 등장하면서 시나리오의 수정을 강요했다. 그는 자신의 대사를 거부하며, 대부분의 장면을 즉흥적으로 촬영하거나 어두운 조명에 숨겨 촬영해야 했다. 이로 인해 영화는 상상 이상의 후반 편집 작업을 필요로 했고, 제작 기간이 더욱 늘어났다.
이 모든 사건들이 쌓이며, 《아포칼립스 나우》는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악몽’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광기 끝에서 피어난 예술
《아포칼립스 나우》는 결과적으로 197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걸작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지 훌륭한 전쟁 영화에 머물지 않는다. 한 인간(코폴라)이 예술을 향한 광기와 집착 속에서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지, 또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어떻게 허물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내용의 충격이나 연출의 힘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드라마이자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혼돈의 끝에서, 인간성과 광기, 폭력과 환각이 뒤섞인 예술이 탄생했다.
“지옥이란 바로 여기다.” 마틴 신이 영화에서 내뱉은 그 대사는, 어쩌면 촬영장을 경험한 모든 이들의 마음속 절규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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